그런 사람이 없다
박정옥

여명으로 사위가 깨어날 무렵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언니다. 이십 년 전 그날도 새벽빛이 창을 두드리기도 전에 요란하게 울리는 언니 전화를 받았다. "너거 형부갔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지방 도시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파리한 얼굴로 무연히 앉아 있던 그녀는 무릎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쩌다가ᆢᆢ. 갑작스러운 죽음이 슬펐지만 궁금했다.
내가 스물쯤, 사촌인 그녀는 초혼에 실패했다. 아이가 하나 있었다고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소문이었기에 짓이겨진 꽃잎 같은 그 상처를 열어 볼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봄처럼 다가온 남자는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그는 달리는 트럭 앞으로 뛰어드는 모험을 한 후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어서' 하면서도 그 남자의 헤살헤살한 웃음과 듬직한 외모에 빠졌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보기에도 선하고 잘생겼고 볼우물이 있어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경제력도 있어서 남들이 말할 때 '그런 사람이 없다' 로 칭찬을 대신했다.
젊은 날 같은 지역에 살던 우리는 자주 어울렸고 내가 언니, 형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친적이었다. 봄꽃이 오만 가지 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사월이었다. 언니가 봄 주꾸미에 꽃물이 올랐다고 맛보러 가자 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잘 익은 토마토 같은 주인 여자가 달고 탱탱한 소리로 "형님, 형님" 하며 언니한테 살갑게 굴었다. 눙치거나 뻔뻔함에 서툴던 나는 장사꾼의 친절을 넘어선 그 행동이 거슬려서 언니를 보았다
"너거 형부 애인이다.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웃으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들키고 나선 저렇게 부른다며 형부는 오늘 노래주점에 갔을 거란다. 식당 주인은 형부가 다른 가게에 가면 속상해하면서 언니한테 이르거나, 곰살맞게 구는 거라고 했다.
바람을 알고 거세게 부딛혔을 때 남자의 눈빛이 사랑하던 사람의 눈빛이 아닌 짐승의 눈빛으로 변하더라고 했다. 그 시절 나의 괄기는 인왕산 솔가지라, 이혼하지 않고 왜 같이 사냐고 따졌다. "딸 둘에 늦둥이 아들까지 자식이 셋이다. 다들 미성년이다. 애들 아버지로는 최고 아니겠냐." 남자는 사람으로도 남편으로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이중직으로 짜여 있었다. 그녀는 바닷바람을 막아내는 방풍림처럼 가정의 울타리로 단단히 버티었다.
남자는 바다낚시를 즐겼다. 시간의 풍경들이 심해에 저장되어 안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유혹했는지, 그날 밤도 바다로 나갔다. 숨어 있던 운명이 찰나에 그를 데려갔다. 갯바위를 넘나들며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해가 박명을 밀치고 바다에 금빛 물비늘을 만들어 낼 때쯤 파랑으로 멍든 몸뚱이가 해안가에 떠올랐다. '나 여기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듯.주검 앞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가족은 알 수 없었다. 목숨 걸던 사랑도, 움켜쥘 수 없었던 사랑도 그 바다에 던져놓고 절반밖에 칠하지 못한 사랑의 갱지를 꾹 눌러 접었다. 그러고 슬픔이 가슬가슬 말라갈 때가지 오랫동안 옹크리고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 물어봤다 "언니, 그 여자들 형부 가실 때 조문 왔었어?" "한 년도 안 왔더라. 죽은 사람이 사랑을 주겠나, 돈을 주겠냐." 예전처럼 그녀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혼적만 남기고 빠져나가는 물처럼 자식들도 손에서 다 빠져나갔다. 그녀는 평소 취미였던 역학을 공부하더니 이름을 걸고 철학관을 차렸다. 간간이 그녀와 전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이십여 년 전 그날처럼 새벽에 울리는 전화에 몸이 먼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하찮은 한 줌 사랑이라도 해봐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지 않겠냐며 접었던 종이를 펼처서 여백을 메꾸는데 .. 안녕한 그녀에게 예고 없는 바람이 불어와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엄마, 영이 아빠와 이혼해야겠어." 그녀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사위를 빼쏜 손녀딸이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금쪽같은 자식과 한 지붕 아래 사는 놈이 변호사를 통해 이혼 소장을 보내다니, 이런 날벼락도 없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새끼의 심장이 퍼렇게 멍들었을 것임을 안다. 몇 달을 가슴팍에 주먹질 해 대며 분노를 삼겼다, 눈에 보이는 허상만 보고 결혼을 허락한 자신을 자책했다. 딸과 가시버시 되고 싶다고 사흘이 멀다고 꽃바구니 들고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 놈이 아니던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놈은 언니가 기도하는 사찰까지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정성이 그런 사람이 없었다. 바람이라니ᆢ.
언니는 형부 때와는 달랐다. 뒤통수 친 그놈이 원하는대로 해주고 재빨리 끝냈다고 한다. 법의 잣대로 재는 날, 딸과 손녀가 더 멍들까 봐. 그리고 손녀의 아비기에 밉지만, 저주는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언니의 그 마음 품에 가슴이 아려왔다. "언니, 마음이 아프지 ?" "이젠 괜찮다. 남은 인생이 더 길지. 곪아가는 종기를 도려낸 것처럼 안심이 된다."
보고 싶다며 부산 한번 내려와서 주꾸미 먹으려 가자고 한다. 봄은 또 오고 새로운 꽃이 피어나지 않겠나며 전화를 끊는 언니 목소리는 처음과는 다르게 들렸다. 어느새 날빛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환하다.
박정옥
jubu002@hanmail.net 아르코 창작지원금 수필 발표 수혜자 선정(2023, 2024년) 2025년 경북 愛 추억 담기 <삶을 엮는 다리>가작 수필집 <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 - 먼 곳으로 문학기행을 간다. 그곳에서 나의 마들렌이 떠오를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