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회 수필 공모 당선작
태풍
주송자

올해는 이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켜니 벌써 태풍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태풍이 두세 개쯤 될 거라고 한다. 주말 내내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점점 거세지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커튼을 내리고 베란다 창문을 단단히 잠근 채 적막한 집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삼십여 년 전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나는 친구와 함께 울릉도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배에 오르려니 혼자 남을 아이가 마음에 결렸다.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나왔음에도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물여섯에 결혼해 서른셋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고작 함께 산 세월은 7년. 남편은 간암 진단을 받고 1년 남짓 투병하다 내 손을 놓았다. 그때 딸애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덟 살. 장례식장,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서 딸애는 천진하게 칼싸움 놀이를 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장난감 칼을 휘두르던 그 맑은 눈망울이 오히려 내 가슴을 베는 더 큰 슬픔이 되었다.
그해 우리 집에 들이닥친 태풍은 남편을 빼앗아 갔다. 예고도 없이 삶의 기둥을 뽑아버린 그 태풍 속에서, 나는 어린 딸을 꼭 끌어안고 세파를 견더내야 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겠다고, 남편 몫까지 다 해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유치원에 데리고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학원으로 빼곡히 하루를 채웠다. 혹여 아이가 뒤처질까 혹여 또 다른 불행이 덮칠까 두려워 아이를 늘 내 눈동자 안에 가둬두고 살았다. 그때는 아이가 나의 전부이자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꿈이라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지독한 집착이기도 했다. 아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나는 늘 보이지 않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 처럼 팽팽한 긴장 속에 살고 있었다
울릉도는 그런 내가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해 떠난 첫 여행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저녁, 우리가 도착한 울릉도 섬에 태풍이 몰아쳤다 우리가 타고 온 배가 육지로 돌아가기도 전에 항로가 끊겨버렸다. 월요일 출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두 막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급히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집 걱정은 말고 태풍이 지나가면 천천히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딸아이의 목소리는 한층 더 의젓했다. "엄마,. 내 걱정은 말고 잘 놀다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없어도 아이는 잘 지내고 있었다. 세상은 당장 무너지지 않았고, 아이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정작 태풍에 발이 묶인 사람은 나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아이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불안이라는 태풍에 사로잡혀 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있었음을.
직장에 전화를 걸어 태풍 때문에 출근할 수 없음을 알렸다. 전화를 끊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겼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명분이 역설적으로 나를 비로소 자유롭게 해준 것이었다. 그날 밤 , 숙소 창밖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바라보며 나는 생전 처음으로 걱정 없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태풍으로 인해 섬에 갇히고 말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일상이라는 가혹한 전쟁터로 부터 비로소 휴식을 허락받은 셈이었다.
결혼 7년 만에 남편을 앗아간 첫 번째 태풍은 내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지만 그날 울릉도의 태풍은 나를 잠시 쉬어가게 해주었다. 늘 나에게만 야박하다고 원망했던 하늘이 그날만큼은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준 듯했다. 태풍은 언제나 파괴만을 남기지 않는다 때로는 뿌리의 깊이를 시험하고 때로는 나뭇가지를 꺾어 놓지만. 그 자리에 더욱 단단한 나이테를 남긴다 태풍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깊은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다시 창밖으로 태풍 소식을 듣는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던 사나운 바람도 있었지만. 나를 가만히 쉬게 해주던 고마운 바람도 있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태풍은 예고 없이 오지만, 언제나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어떤 태풍은 예고 없이 오지만 언제나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는 않는다.어떤 태풍은 아픈 상처를 남기고, 어떤 태풍은 깊은 쉼표를 남긴다. 그렇기에 나는 안다. 태풍은 두려운 존재이지만, 때로는 삶에 보내오는 피할 수 없이 고마운 위로이기도 하다는 것을